감정과 표현
슬픈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 아침 이슬에 활짝 핀 깨끗한 꽃망울에 가슴을 떠는 것, 작고 노란 병아리를 엄마 닭이 되어 포근하게 가슴에 품어 주는 것… 이런 것이 바로 감정이다.
감정이란 무엇일까?
많이 드러내는가 적게 드러내는가의 차이 그러니까 아마도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세 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감정의 표현을 어떻게 할까?
말로 할까? 글로 할까?
몸짓으로 할까? 눈빛으로 할까?
정답은 전부 다.
배고픔, 졸림, 그리움, 서러움, 기쁨,
행복감, 고통, 사랑, 기다림,
소망, 애태움, 피곤함, 흥미,
용기, 아픔, 용서, 화해,
질투… 이러한 감정들을
매 순간 순간 느끼며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감정은 사람만 느끼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그 개성에 따라 아름다워 보이는 것, 어쩐지 정이
가는 것, 다른 것보다 특별한 것을 따로 갖는
즉 기호라는 것을 갖고 있다.
특별히 좋아하는 색깔이 있고 좋아하는 무늬가 있고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다.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는 주인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따지며 따르지는 않는다. 절대 그런 일은 없다. 이런 것을 보면 적어도 동물은 사람이 추구하는 종류의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따뜻하게 아름답게 입는 것, 맛있게 배부르게 먹는 것, 안전하게 편안하게 자는 것… 의식주(衣食住)의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이다.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이야말로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보는 이들의 마음을 밝게 만들어 주고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과 욕구야말로 찬란한 문화와 화려한 예술의 세계를 일구어냈던 주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감정은 언제나 한결같고 합리적이며 객관적이지는 않다.
예를 들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한 사건을 두고도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은 전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개성이라느니 취향이라는 하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아름답다, 추하다, 징그럽다, 귀엽다 라고 하는 것들은 어떤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아름다움을 보는 기준이 모두 다르고 그 아름다움을 보고 감동하는 감(感)의 지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꽃을 좋아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장미를 어떤 사람은 국화를 어떤 사람은 라일락을 어떤 사람은 튤립을 어떤 사람은 난초를 어떤 사람은 백합을 그렇게 좋아하는 취향이 다를 수 있다. 같은 장미라고 해도 어떤 사람은 정열적인 빨간 색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순수한 흰색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또 어떤 사람은… 그렇게 모두 취향과 개성이 다른 것이다.
‘국민성’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먹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인은 많이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식가라고 한다. 프랑스인은 미적인 요소를 따지는 미식가라고 한다. 또 영국이나 미국인은 영양가나 질을 따지는 실속파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 우리는 모든 것을 한 상에 차려놓고 끝내버리는 그런 ‘급한 성격파’쯤 되지 않을까요?- (믿을 만한 정확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현상을 두고 표현하는 방법 역시 그 사람의 취향이나 개성에 따라 그리고 자주 쓰는 표현 방법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벌써 겨울이네’ 하고 말하는 사람과 ‘이제 겨울이네’ 하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전혀 다를 것이다.
‘인생은 정말 살아볼 가치가 있어’ 하고 말하는 사람과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야’ 하고 말하는 사람, 이 두 사람의 마음 역시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보는 것은 실제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 개인의 감정 때문에 실제와는 다른 모습을 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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